Claude Opus 5.5가 건축 허가용 도면 세트를 그려낸다

Hacker News2026-11-03

건축가 스티븐 갤러거가 13개 AI 모델에 똑같은 주택 설계 과제를 주고 도면 작성을 평가한 결과, 2026년 9월 22일 공개된 Anthropic의 Claude Opus 5.5가 사실상 유일하게 건축 허가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의 시공도면 세트를 산출했다. CAD 프로그램을 전혀 거치지 않고 모델이 직접 도면 전체를 그린 결과다.

테스트 방식은 단순하다. 참여 모델들에게 간단한 주택의 개념 스케치와, 저자가 몇 년 전 AutoCAD로 직접 작성한 다른 주택의 시공도면 세트를 참고자료로 함께 건넸다. 스케치만으로도 숙련된 도면 작성자라면 허가와 시공에 필요한 완전한 도면 세트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입력이었다. 모델별 산출물은 극명하게 갈렸다.

2024년 공개된 Claude Opus 3는 아예 도면 작성을 거부했고, 2025년과 2026년 초 모델들은 만화에 가까운 조악한 그림을 내놓았다. 2026년 9월 이전에 나온 모델 중 기본 평면 배치를 큰 오류 없이 그려낸 사례는 없었다. 같은 달 공개된 Grok 4.7은 특히 입면도 결과물이 형편없는 축에 속했다. Opus 5.5만이 이중 경사지붕의 매싱을 정확히 표현했는데, 첫 초안에서는 처마와 용마루 처리에 오류가 있었고 피드백을 받은 뒤 최종 도면에서 이를 바로잡았다.

두 번째 테스트는 도면의 완성도 자체를 겨냥했다. 20세기 초 건축가 프랭크 스나이더의 손그림 상세 도면집 『Building Details』의 도판 몇 장과, 저자가 직접 실측한 역사적 건물의 사진 및 정리되지 않은 현장 스케치 묶음을 Opus 5.5에 건넨 것이다. 기술 도면을 하나의 공예로 다루는 능력을 재는 시험이었다.

배경에는 오랜 정체기가 있다. 생성형 AI는 이미지 생성 같은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했지만 기술 도면 작성에는 사실상 쓸모가 없었다. 2026년 봄까지만 해도 최상위 모델들의 도면은 조악하고 도식적이었다. 변화는 2026년 여름과 가을에 걸쳐 나온 프런티어 모델들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났고, 그 속도가 워낙 빨라 건축 업계는 아직 이 흐름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개발자에게 이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결과물의 성격보다 작업 방식에 있다. 저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지난 1년간 겪은 전환, 즉 기술 산출물을 직접 만드는 일에서 점점 더 유능해지는 모델을 감독하는 일로 옮겨가는 변화가 건축에도 곧 닥칠 것으로 본다. 실제로 Opus 5.5의 도면을 검토하고 수정 지시를 다는 작업은 놀랍도록 일상적이었다고 한다. 실력은 있지만 경험이 부족한 사람의 도면에서 나올 법한 실수들이었고, 지적을 받으면 사람처럼 고쳐서 다시 내놓았다는 것이다.

한계도 분명하다. 모델마다 투입된 사람 피드백의 양이 달랐기 때문에 조건을 완전히 통일한 비교는 아니다. 초기 결과물의 품질 차이가 워낙 커서 동일한 교정량을 주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고, 저자는 최고 초안을 낸 Opus 5.5에 가장 많은 피드백을 몰아줬다. 서면 코멘트와 두 차례의 레드라인 수정이 오갔다. 대상 건물도 상당히 단순한 주택이어서 Opus 5.5의 결과물 역시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단독주택 도면 시장의 저가 영역과 비교하면 지금도 그보다 나은 수준이라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주목할 지점은 이 문제가 이미지 생성의 연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간 구조를 이해하고, 건축 코드와 시방 지식을 동원하고, 도면이라는 규칙적인 표기 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복합 과제다. 코드 생성 에이전트가 문법과 관례를 학습해 산출물을 내듯, 도면 생성 모델도 암묵지와 표기 규칙을 동시에 다루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