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는 열흘짜리 금융 업무를 AI 에이전트에 맡긴다

latentspace2시간 전

AI 네이티브를 표방하는 자산관리 회사 아르카(Arca)가 자체 구축한 에이전트 스택을 공개했다. 이 회사의 AI 리드 엔지니어인 아만 싱은 지난 10월 AI Engineer New York 무대에서 이 시스템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설명했다. 핵심은 에이전트가 백그라운드 업무를 광범위하게 처리하되, 최종 판단과 자금 이동은 인간 어드바이저가 쥔다.

아르카의 에이전트 작업은 흔히 말하는 '오래 도는' 작업과는 결이 다르다. 하나의 태스크가 최대 열흘까지 이어지지만, 그 사이에 여러 행위자와 의사결정 지점, 인수인계가 끼어들며 계속 멈췄다 다시 시작되는 구조다. 세무 관련 대응처럼 며칠에 걸쳐 확인과 승인이 반복되는 업무가 대표적이다. 이런 파편화된 흐름을 버티게 하는 것이 아르카가 직접 만든 메모리 계층이다.

메모리는 고객 단위로 상시 유지된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음에 무엇을 추적해야 하는지, 당장 며칠 안에 처리할 항목과 장기적으로 지켜볼 항목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느 작업의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에이전트가 기록하고 갱신한다. 사람이 매번 상황을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되도록 상태를 시스템이 들고 있는 셈이다.

모델은 Anthropic과 OpenAI 등 프런트티어 랩의 것을 섞어 쓰며, Claude를 주력으로 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자체 하네스다. 관리형 에이전트 하네스를 사다 쓰는 대신 직접 만들어, 사내 벤치마크를 기준으로 태스크마다 가장 적합한 모델을 자동으로 골라 붙인다. 하네스를 소유하고 있으니 더 나은 모델이 나오거나 공급자를 바꿔야 할 때도 구조를 갈아엎지 않고 교체할 수 있다.

안전 정책은 확률적 판단에 맡기지 않는다. 에이전트의 권한은 분석과 해법 제안까지로 제한되고, 트레이딩을 비롯해 실제로 돈이 움직이는 일은 인간 어드바이저가 수행한다. 위험을 수반하는 도구와 태스크는 에이전트가 스스로 실행할 수 없도록 결정론적 규칙으로 막아두었고, 프롬프트 인젝션처럼 알려진 AI 보안 이슈에 대한 검증 절차도 별도로 돌린다.

에이전트 자체는 샌드박스에 가둬져 있지 않지만, 연산이 필요한 순간에는 샌드박스를 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장치가 있다. 에이전트가 작성한 코드를 회사가 기대하는 엄격한 포맷으로 변환하고, 원본 코드는 버린 뒤 그 포맷에 가드레일을 걸어 백엔드로 보낸다. 덕분에 에이전트는 코드로 데이터를 조회하고 집계하고 가공해 재무 계획 같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으면서도, 백엔드에는 통제된 형태의 요청만 도달한다.

개선 루프도 자동화되어 있다. 인간 어드바이저의 피드백과 에이전트 실행 트레이스를 모아 하네스를 손보는 데 쓰는데, 이 데이터를 분석해 하네스 변경안을 제안하는 메타 에이전트가 따로 존재한다. 운영 과정에서 쌓인 지식이 에이전트의 컨텍스트로 환류되는 구조로, 평가 데이터셋과 하네스가 함께 진화하는 형태다.

배경에는 'AI 도구를 쓰는 회사'와 'AI 네이티브 회사'를 가르는 조직적 선택이 있다. 아르카는 최근 General Catalyst가 리드하고 Index Ventures와 Venrock이 참여한 4,85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컴플라이언스와 감사 가능성을 기본값으로 두어야 하는 금융 규제 환경에서는, 남이 만든 하네스에 얹히기보다 직접 소유하는 편이 통제권 확보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개발자에게 주는 시사점은 장기 실행 에이전트를 만들 때 '모델'보다 '주변부'가 승부처라는 점이다. 태스크 라우팅, 고객별 영속 메모리, 상태와 책임자 추적, 샌드박스와 코드 변환 게이트, 트레이스 기반 평가 루프 — 이 다섯 가지가 며칠짜리 업무를 안정적으로 굴리는 골격이 된다. 특히 에이전트가 쓴 코드를 그대로 실행하지 않고 정규화된 형태로 바꿔 검사하는 발상은, 코드 실행 권한을 주면서 위험을 줄여야 하는 모든 도메인에 응용할 수 있다.

한계도 분명하다. 이 시스템은 아르카 내부 운영 자산이라 구현체나 벤치마크 수치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고, 모델 선택의 근거가 되는 사내 평가 결과도 검증할 방법이 없다. 또 에이전트의 자율성은 의도적으로 분석 단계에 묶여 있어, 완전 자동화된 금융 실행을 기대하는 용도로는 참고가 되지 않는다. 규제 산업에서 '사람이 최종 결정을 쥔다'는 전제를 유지한 채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설계 사례로 읽는 것이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