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미디어, AI 학습은 공정이용이지만 원문 재현은 라이선스 대상이라고 주장

The Verge어제

위키백과를 운영하는 비영리 재단인 위키미디어재단이 AI 저작권 소송전에서 어느 한쪽도 들지 않는 중간 지대를 택했다. 언어모델이 저작물을 학습하는 행위 자체는 공정이용으로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 결과물을 사용자에게 그대로 토해내는 챗봇은 라이선스를 지켜야 한다는 이분법이다. 재단은 법원이 이 구분을 뭉개면 무료 지식 생태계와 오픈소스 도구 개발 양쪽이 함께 다칠 수 있다고 본다.

이 입장은 지난 금요일 제출된 법정의견서(amicus brief) 형태로 공개됐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언론사들이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낸 일련의 소송에 참여한 것이다. 재단은 소송 당사자들의 주장이 공정이용 원칙을 지나치게 넓고 단순하게 적용하도록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재단의 법률 총괄 스티븐 라포르테는 성명에서 공정이용 원칙을 신중하게 적용하지 않은 판결이 나오면 무료 지식의 지속가능성과 오픈소스 기술 발전이 함께 위협받는다고 밝혔다.

재단이 제시한 기준은 세 단계다. 우선 웹사이트를 긁어 데이터셋을 만드는 행위는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는다. 다음으로 라이선스 없이 사전학습에 쓰는 것은 원본과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낼 때 공정이용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사용자 질의에 응답해 원본을 사실상 복제하고, 그 출력이 독자가 원본을 찾지 않게 만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때는 원저작물을 대체하는 것일 뿐 변형이 충분치 않으므로 라이선스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위키백과의 경우 그 라이선스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조건을 뜻한다. 출처를 밝히고, 2차 창작물도 같은 조건으로 공개해야 한다. 재단은 챗GPT 같은 서비스가 CC 라이선스로 자유롭게 풀린 텍스트를 출력하면서도 그 조건은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위키미디어 사이트가 AI 학습의 핵심 데이터 공급원이 된 동시에, 그 AI가 방문자를 빨아가며 문서를 관리하는 공동체의 기반을 갉아먹고 있다는 진단도 함께 내놨다.

재단은 AI가 위키백과에 유용한 측면도 인정한다. 편집자들이 문서 훼손을 잡아내고, 저작권 침해나 신상 공개 같은 문제를 탐지하며, 보완이 필요한 문서를 찾아내는 데 언어모델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단 CEO 버나뎃 미한은 지식 접근성을 AI로 넓히는 것은 강력한 목표이지만,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기여자와 공동체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송 당사자들의 입장은 훨씬 단순하다. 뉴욕타임스는 오픈AI가 자사 사이트를 긁어 학습 데이터를 구축한 것 자체가 침해라고 본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델 학습이 공정이용이라는 입장이며, 오픈AI는 원문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은 드문 버그라고 설명한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지난 9월 제출한 서면에서 코파일럿이 기사 문장을 통째로 재현하는 경우는 드물어 학습의 변형적 목적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분석을 내놨다.

개발자 입장에서 이 의견서는 데이터 파이프라인 설계의 판단 기준을 던진다. 학습 코퍼스의 라이선스 메타데이터를 수집 단계에서 정리해두고, 모델 출력이 원문을 길게 대체하는지 감지하는 필터와 출처 표시 장치를 미리 붙이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CC BY-SA 계열 자료를 섞어 쓰는 프로젝트라면 출력물에 동일 조건이 전염되는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

다만 이 문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법원이 재단의 절충안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어느 한쪽 손을 들어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재단도 성명에서 양쪽 극단이 모두 위험하다는 점을 강조했을 뿐, 구체적인 판결 시점이나 합의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았다.